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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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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1 No. pp.97-151
노채(勞瘵)와 조선통신사 의학교류 - 의학문답 기록을 중심으로 -
함정식 전(前) 경희대 한의학과 겸임교수
Key Words : Infectious disease,Medical exchange,Medical questions and answers

Abstract

역병 유행 시기에 조선 의가는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에도[江 戶]를 방문하여 의학교류를 통해 전염병 질환, 특히 노채 증상 극 복을 위해 협력했다. 특히 일본 의사는 교류를 하며 노채에 대한 지식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 역병 분야 발전 과정 중에 조선통신사의 의학교류가 학술 적․임상적 발전에 기여했다고 본다. 의학문답에서 일본 의사는 전염성 질환 노채에 대해 반복적으로 물었다. 노채는 18세기 모든 사행의 의학문답에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주제였으며, 계미사행까 지 관심이 줄지 않았다. 신묘사행 때의 노채에 대한 의학문답은 후대(後代) 사행에서 자주 거론되는 전형이 되었다. 당시 기두문의 설명은 간략했고 기해사행 당시 권도의 답변은 상대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권도의 답변만으로 온전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 만, 적어도 기해사행의 의학교류가 신묘사행 교류에 비해 의가의 수준이 향상되고 성숙되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무진사행 때는 고 방파가 문답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무진사행부터 15년 후인 계미 사행 시기에 일본 의사의 학문적 경향이 다양해졌다. 이때 의학문 답에 참여한 일본 의사는 이전 사행 때의 노채 관련 기록을 적극 활용했다. 가령, 노채 치료에 요코타 준타[橫田準大]가 최씨사화혈 (崔氏四花穴)을 언급했는데, 무진사행 시 언급했던 니와 세이하쿠 [丹羽正伯]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대(前代) 사행의 노채 관련 기록이 후대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려주는 사례다. 한편, 의학문 답에 참여한 인사가 의사 신분이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의 학문답이기에 참가자는 의원(醫員) 신분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현전하는 의학문답 기록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의사가 아닌 일반 문사가 참여한 경우도 많았고 문사들로만 의학 문답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노채 의학문답에 참여한 사람만큼은 예외 없이 의사들이 참가했다. 노채가 의학 관련 주제 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했던 이유라 생각한다. 끝으로, 노채 의학문 답 기록 중 사본 기록에 오류가 보이는데, 『상한필어(桑韓筆語)』에 는 기본적인 이법방약(理法方藥)에서조차 오류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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