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硏究 Vol.32 No. pp.77-110
14세기 후반 대일 외교사절로 본 한일관계
Key Words : 왜구,피로인,통신(通信),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이마가 와씨[今川氏],오우치씨[大內氏],삼도(三島),하카타[博多]
Abstract
경인년(1350) 이후 한반도에 왜구 침략이 급증하여 그 피해가 커지자, 고려정부는 포획한 왜구와 피로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 여 1366년부터 대일 외교교섭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당초에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에 대해 금적(禁賊)이나 피로인 송환 교 섭을 하였으나, 1377년부터는 왜구 근거지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쥬고쿠[中國]․규슈[九州]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외교력 을 집중해 갔다. 종래부터 조선국왕이 ‘일본국왕[幕府將軍]'에게 신의를 통하기 위해 파견한 ‘통신사(通信使)'가 주목받아 왔는데, 그 전사(前史)로 14세기 후반의 대일 외교 사절이 검토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기의 대일 외교사절과 외교교섭을 중심으로 검토해, 사절의 명칭과 함께 여일(麗日)․조일(朝日) 간의 왜구 인식과 그 대응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해 양국 관계의 일단을 재조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