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硏究 Vol.33 No. pp.1-29
1636년 능서관(能書官) 전형(全滎)의 『해사일기(海槎日記)』 연구
Key Words : 전형,해사일기,김세렴,황호,임광,능서관,통신사,병자 사행
Abstract
1636년 부사 김세렴의 추천에 따라 능서관으로 일본을 다녀온 전형은 자신의 사행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후손 집안에 “전진 사해사일기(全進士東槎錄日記)”라는 표제 하의 『병자해사일기(丙 子海槎日記)』가 전한다. 17세기 전반의 사행록은 『해행총재』 외의 사행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작자는 정사, 부사, 종사관 등 사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면 능서관 전형의 『해사일기』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문집의 기록을 보면 전형의 교유관계가 중앙까지 아우르고 있었 고 이미 서법으로 명성이 나 있는 상태였다. 김세렴이 여러 차례서신을 보내 사행에 함께 할 것을 요청하였던 점, 10월 1일 부산 에서 김세렴을 만났을 때까지 사행 참여를 고려하였던 점과 함께 와다 소인에게 본인의 지위를 김세렴을 따라온 것으로 밝힌 동시 에 김세렴의 명 이외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일본 문사와 수응하였 던 점을 아울러 감안한다면, 능서관이라는 직책은 1636년 통신사 행에서 김세렴을 보좌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되었던 직임이었던 것 으로 보인다. 전형의 기록과 김세렴의 기록을 전반적으로 비교하면 내용이 유 사하면서도 전형 쪽의 기록이 더 자세하다. 부사와 여정을 함께 하면서도 일본인을 만나고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 사신보다는 자유 로운 면이 있었기 때문에 상세한 관찰과 기록이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전형의 기록은 사신의 사행록을 풍부하게 보충할 수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형에게 통신사행은 중앙의 인물들과 교유관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관찰뿐 아니라 같이 사행을 함께 한 조선인들도 관심의 대상이자 관찰의 대상 이 되었다. 따라서 『해사일기』는 사신이 아닌 사행원으로서 겪은 사행의 실제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