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硏究 Vol.35 No. pp.31-56
駿府、駿府城における徳川家康と朝鮮通信使との関わり -駿府城跡天守台発掘調査成果の報告を中心として-
Key Words : The first Joseon envoys of the Edo period,Tokugawa Ieyasu,Sumpu,Sumpu Castle,Hae Sa Rok,Excavation survey of the tenshu's stone base
Abstract
게이초(慶長) 12년(1609) 제1회 조선통신사는 슨푸와 슨푸성을 찾았다. 부사 경섬(慶暹)이 기록한 『해사록』에는 그때 슨푸와 슨푸성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해사록』의 기술과 일본 측 사료에서 슨푸성의 축성 경과를 비교하면 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사록』은 당시 슨푸나 슨푸성의 모습을 담은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축성 도중에도 문이나 어전 등 외국 사절들과 대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슨푸성은 3개의 곡륜과 3중의 해자로 이루어진 윤곽식 영역의 성곽이다. 덴쇼기 (天正期: 16세기 말), 게이초기(慶長期: 17세기 초) 두 차례에 걸 쳐 축성된 후 화재나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어, 메이지 시대를 맞이한다. 병영, 관공서, 학교 등으로 이용된 후, 제2차 세 계대전 이후 성의 중심부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원이 되어 현 재에 이른다. 2016년부터 진행된 천수대 발굴조사에서는 중세 이 마가와씨(今川氏)에 관한 유적, 덴쇼기 슨푸성 천수대와 게이초기 슨푸성 천수대가 발견되었다. 그중에서도 게이초기 천수대 조사에 서는 천수대 전체의 규모와 돌담의 특징 등 상세한 내용이 밝혀진점, 돌담의 뒷면과 기초 구조가 밝혀진 점, 축성 및 복구 등 경과 흔적이 확인된 것 등 세 가지 성과가 있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게 이초기 슨푸성이 다른 성에 비해 파격적인 규모와 독자성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외 특징들도 함께 고려 해 볼 때 슨푸성은 특별한 성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에야 스(家康)에 의한 슨푸 정권의 상징으로서 적합한 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슨푸와 슨푸성은 이에야스가 그 정권을 확립시켜 나가는 상 황에서 일본과 조선의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무대 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