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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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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7 No. pp.1-33
조선후기 통신사행으로 인한 연례송사 정지와 제 문제
심민정 부경대학교 해양인문학연구소 인문학술연구교수
Key Words : Yeonryesongsa(Japanese envoys in one year),Suspend the Yeonryesongsa,Gyeomdae(A system to entertain multiple envoys at the same time),Receive a letter discontinuing the Yeonryesongsa,Send a thank-you reply.

Abstract

임진전쟁 이후 일본과의 국교 회복 과정에서 약정된 1609년 기 유약조에 의해 외교․통상을 목적으로 하여 매년 1회씩 정기적으 로 도항하던 일본 사절을 연례송사(年例送使)라 한다. 조선후기 통 신사행으로 인한 연례송사 정지는 임진전쟁 후 교린관계가 회복되 어 가는 과정에서는 정례화되지 않았던 규례였는데, 초량왜관 시 기에 이르러서야 공식화되었다. 초량으로 왜관이 이전한 후 처음 파견되었던 1682년 임술통신 사행은 연례송사 정지 정례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행 준비, 차왜의 파견과 접대에 연례송사 접대 및 관련 업무까지 겹 칠 경우 경제적 부담과 업무의 과중 등으로 인한 폐단이 초래될까 두려웠던 조선 정부는 대마도 측에 통신사행 기간에는 연례송사를 정지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는 수락되었다. 그래서 이후 통신사행 파 견 기간에는 대마도로부터 연례송사가 건너오는 것이 정지되었다. 한편 정례화가 되기 전에 통신사행 기간 동안 연례송사가 최초 로 정지된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1636년 통신사행 때였다. 이 시 기는 대마도 측에서 발생한 야나가와씨[柳川氏]와 대마도주 사이 의 소송이 진행되었던 시기로, 통신사행, 연례송사 정지, 연례송사 겸대제 교섭 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각 외교사행과 교섭 등이 유기적으로 진행과 정지를 반복하면서 연례송사 범주, 파견, 접대 의 겸대 등의 규정이 완비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행으로 인한 연례송사 정지를 결정하는 것은 서계를 접수 하면서부터인데, 서계의 수․발신자와 회답서계 문제는 1682년 통신사행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은 1711년 통신사행 때 이 충돌이 가장 격화되었는데, 봉행왜가 격에 맞지 않게 동래부사 앞으로 서계를 작성하여 보내는 것에 대해 허용할 수 없었던 조선 측과 회답서계를 주지 않으면 연례송사 정지를 철회하겠다는 대마 도 측의 강한 대응이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례송사 정지에 대한 회답의 뜻은 이듬해에 파견되는 세견제1선 편의 서계에 포함 시키는 것으로 규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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