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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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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7 No. pp.63-90
19세기 세계지리지와 일본에 관한 지식 확산에 대한 고찰 - 최한기(崔漢綺)의 『지구전요(地球典要)』 「일본」 조목을 중심으로
박혜민
Key Words : Choi Han-gi,J igujeonyo,Lee Deok-Moo,Cheongryeonggukji,Japanology

Abstract

본고는 최한기(崔漢綺, 1803~1879)의 『지구전요(地球典要)』 일본 조목을 중심으로 지식의 재맥락화 양상의 특징을 지식사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1764년 통신사행으로 촉발된 일본 연구가 조선 후기 지식의 지형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19세기 세계지리지인 『지구전요』 일본 조목을 중심으로 일본에 관한 지식 수용의 특징적 면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한기는 당대 최신 정보를 담고 있었던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영환지략(瀛環志略)』을 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일본 조목에 한하여 대부분의 내용을 1719년 통신사행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海游錄)』에서 가져왔다. 둘째, 최한기는 위원(魏源)이 중국해를 기준으로 지역을 분류하는 방식 을 수용하여 각 나라들을 범주화하지만 나라별 조목의 세부항목은 기학(氣學)의 관점, 즉 기의 활동운화(活動運化)를 기준으로 구성 하였다. 셋째, 최한기는 『해유록』을 다음과 같이 재맥락화하였다. 항목에 맞게 간략화, 명료화하여 보다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하고, 또한 신빙성이 부족한 정보와 주관적 평가를 삭제하여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하였으며, 기후의 경우 한역 지리지와 지도를 참조하 여 위도와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여 재서술하였다. 넷째, 최한기는 이규경(李圭景)과 교유하였고 이덕무의 학술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18세기 원중거(元重擧)와 이덕무(李德懋)의 일본 연구를 『지구전요 에서 인용하지 않는다. 지식의 체계화는 수집과 대조, 편집, 비평, 요약을 통해 실천되 고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지식'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지식사의 관점에서 지식을 정교화하는 목적은 기존의 학술적 범주들에 동화 혹은 적응을 시켜 당대 사회에 유통하기 위함이다. 원중거의 『화국지(和國志)』의 경우 미완성의 저술로 유통하기에 난관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덕무의 『청령국지(蜻蛉國志)』경우는 『화국지』를 인용서로 적극 활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서적들을 대 조하여 내용을 선별하고 또 그 내용들을 항목화한 후 요약, 편집 하여 완성한 연구서였다. 그러나 19세기 조선 지식인이 세계지리 지를 저술할 적에 18세기 연구서가 인용서목에 올라가지 못했던 까닭은 사실 새로운 지식에 대해 관심은 있었으나 성리학의 위계 와 금기에 따라 공론화하지 않은 경화사족의 ‘보수성'과도 무관하 지 않을 것이다. 서얼 출신의 두 지식인이 객관적 인식의 대상으로 일본을 발견한 것은 타자에 대한 관심을 통해 자기의식의 갱신을 도모하는 순기능적인 지적 활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은 공론화되지 않고 그들만의 것으로 책 속에 머무를 뿐 관념적 차원 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실천을 상실한 지식은 확산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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