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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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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8 No. pp.1-46
1596년 근수배신(跟隨陪臣) 일본 파견 배경과 황신의 활동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Key Words : Yeonryesongsa(Japanese envoys in one year),Suspend the Yeonryesongsa,Gyeomdae(A system to entertain multiple envoys at the same time),Receive a letter discontinuing the Yeonryesongsa,Send a thank-you reply.

Abstract

본문에서는 1596년 명과 일본의 강화교섭 시기 명이 파견한 봉 왜책사를 수행한 조선의 배신을 파견한 배경과 경과를 분석하였 다. 선행 연구에서는 황신의 일본 왕환을 통신사행으로 간주했으나, 이는 일본측 사료와 일부 후대 편찬된 사료에서 통신사로 명 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선조실록』을 비롯해 당시 영의정 류성룡의 『서애집』, 대사헌 이호민이 1597년 정월에 명 만력제에게 올린 주문, 윤국형의 『갑진만록』등의 내용을 토대로 조선 조정에서는 ‘근수배신'의 직함으로 파견되었음을 밝혔다. 또 한 본문에서는 근수배신 황신 일행의 일본 왕환과 일본 관백의 책봉을 명신종에게 요청하는 일본의 표문과 강화의 조건으로 황제 가 보낸 책봉고명과 칙유문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무리하게 강화를 추진한 고니시 유키나가와 쓰시 마 태수 소 요시토시의 세력에 의해 관백을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 는 의례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가토 기요마사 등의 참소로 인해 결국 히데요시는 선조의 서폐를 수용하지 않고 조선 사신을 만나지 않았으며, 황제에 대한 회사(回謝) 표문도 없이 명 사를 추방하다시피 돌려보냈다. 일본의 이와 같은 상황은 황신 일 행이 정보 수집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일본과의 강화를 원치 않았던 선조는 조정 대신들이 서계를 전 달하지 못한 황신의 탄핵을 요청했음에도 황신 일행을 포상하기에 이른다. 선조는 황신이 올린 장계 외에도 그를 직접 불러 문답을 통해 당시 관백이 조선 사신을 만나기를 거부한 이유와 명사가 관 백을 책봉했으나 결국 강화가 결렬된 이유를 상세히 질문했다. 또 한 황신 일행은 쓰시마가 왜구의 조선 침략에서 앞잡이 노릇을 한 점을 간파하여 이후 왜구 재침에 맞서 쓰시마의 지세와 호구수를 파악하고, 쓰시마에 대한 계책을 적극적으로 세울 것을 강조한 것은 그의 정세 파악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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