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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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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8 No. pp.83-115
계미사행(1763~1764) 사자관 홍성원의 적취 편액
진복규 포항고전연구소 연구원
Key Words : 계미통신사행,사자관,홍성원,편액,<적취> 편액,Year of Sheep Tongsinsa Mission(癸未通信使行),Royal Scribe(寫字官),Hongseongwon(洪聖源),Piane(扁額),Green Mountain(積翠),癸未通信使行、書写官、洪聖源、扁額、<積翠>扁額

Abstract

이 글은 1763년 계미통신사행의 수행 사자관(寫字官)으로 일본 사행에 참여했던 정정재(正正齋) 홍성원(洪聖源, 1725~?)이 일본 교토[京都]의 묘법원문적(妙法院門跡) 건물에 남겨둔 <적취(積 翠)> 편액(扁額)과 그의 사자관 경력을 살펴본 것이다. 홍성원의 사자관 경력은 『승정원일기』와 규장각의 의궤 서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40년 동안 조정과 왕실의 서사역(書寫役) 을 맡아 숱한 업적을 남겼다. 왕실 관련 서적의 간행에 필요한 목 판의 저본(底本) 글씨와 왕의 어제(御題) 현판의 글씨는 물론 왕이 서사한 비문과 현판 글씨의 보획(補劃)을 담당하였다. 왕실의궤의 서사역도 담당하였다. 당시 가장 뛰어난 사자관으로 인정받아 이 러한 일을 맡아 왕과 신료들의 찬상(讚賞)을 받았다. 왕에게 숱한 벼슬을 받았고, 숙마(熟馬)를 비롯한 상급을 하사받았다. 계미통신사행의 사자관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서 여러 편액 을 썼는데, 그 중 묘법원에 <적취> 편액을 남겼다. 이 편액의 서 풍은, 앞선 통신사행 사자관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대자 서풍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단정하면서도 변화를 동반한 필획과 빈틈없는 글자의 짜임, 흠잡을 데 없는 전체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이러한 편액도 통신사행의 역할과 예술적 교류 에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어, 지금까지 예술적 정취를 이국땅에 남기고 있다. 적취의 의미는 푸른 산을 격조 있게 이르는 말로, 건물의 이름 이라기보다 주변 경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부탁으로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묘법원(妙法院) 건물에 걸리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연은 알지 못한다. 사행 중이던 홍성원이 당시 서경 (西京)이라 불리던 교토를 통과하던 때에 쓴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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