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硏究 Vol.38 No. pp.117-142
1943年次ㆍ朝鮮総督府学務局による「倭館窯」発掘調査概要とその意義
Key Words : Translators,Waegwan kilns,Ritual objects,Bentengcho,Joseon Governor-General's Office Academic Office,Busan Archaeological Society.
Abstract
쓰시마번은 왜관요를 운영하는데 있어 조선에 흙과 사기장인의 파견을 요청했다. 그 직접 교섭을 담당한 사람은 역관이었다. 따라 서 역관은 일본인을 위한 다완 생산의 실태를 가장 잘 아는 존재 가 되었고, 때로는 통신사의 예물로 쓰인 다완 제작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즉, 왜관요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통신사가 가지 고 간 예물의 주문과 생산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에도 중요한 과 제가 된다. 왜관요를 비롯한 통신사와 역관사 연구는 문헌사학이나 미술사 연구를 중심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왔으나, 근대의 기록 자료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고고학 조사와 관 련된 근대 기록자료를 활용하면 통신사와 역관을 둘러싼 공간을 보다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20세기 중반까지 왜관 가마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사 지점 이나 발굴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 본 연구에서 는 필자가 새롭게 발견한 1943년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실 시한 왜관요 발굴조사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그 가치와 의의를 살 펴보고자 한다. 이 발굴조사는 병원 신설을 서두르는 부산부의 신청에 따라 조 선총독부 학무국 주도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전에 건립된 부산부립병원의 건설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구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사 실이 알려지자 사적 지정 해제라는 결말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도 와 사진은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왜관요의 모습을 담은 기록 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당시에는 아직 에도 시대 의 지형이 거의 남아 있었고 왜관요의 대략적인 분포 범위가 처음 으로 밝혀졌다. 통신사와 역관사가 일본에 가져온 예물의 주문과 그 생산을 밝히기 위해서도 앞으로 왜관 요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학술적 조사가 요구되며, 이번에 소개한 자료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