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硏究 Vol.41 No. pp.1-39
통신사외교와 국서(國書)
Key Words : Reciprocal diplomatic documents,1748]
Abstract
임란 이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조일 간에 260년 가까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양국관계에 고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외교를 통해 조선 국왕과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쇼군[將軍]이 주고받는 국서(國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조일 양국의 국서란, 발․수신자를 ‘조선 국왕'과 ‘막부 쇼군[大君]'의 단 ‘1인'으로 설정하여 직접 주고받는 왕복문서로서, 내용도 자신들의 외교상대에 한해 언급할 것을 추구한 바, 소위 적례(敵禮: 대등)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예로 1748년 무진통신사행(일본에서는 엔쿄 신사[延享信使])의 경우, 조일 양국의 절목강정 교섭 단계에서 일본측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는데, 쇼군 습직 축하와 더불어 ‘퇴휴관백'(은퇴 쇼군) 및 ‘와카기미[若君]'에게까지, 쇼군가 3대에 걸친 서계와 예물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조선은 절목강정 단계에서 일본측의 요구를 막아내지 못한 채 그대로 조정에 전달한 실무자들(동래부사․접위관․수역)을 2차례나 유배형이라는 중벌에 처한 한편, 일본측[對馬藩]에도 경고의 뜻을 전달한 바, ‘교린관계에 이군지례(二君之禮)는 없다'는 ‘적례'를 관철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무진통신사행이 지참해간 ‘조선국왕 영조[李昑] 국서'(1748)란, 바로 임란 이래 조선이 지켜온 대일본 적례외교 방침이 반영된 국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국왕의 국서에서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라면, ‘봉서奉書)' 형식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국왕사절단인 통신사가 에도성의 전명의에서 막부 쇼군에게 전달한 국서에는 양국의 우호 내지는 전례와 관련된 문언으로서 “인의(隣誼)․구호(舊好)․인호(隣好)․수목(修睦)․교호(交好)․고상(故常)․구전(舊典)”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통신사들이 받아온 막부 쇼군의 회답서를 보더라도 비슷한 의미의 “강신(講信)․영호(永好)․교린(交隣)․수목․구전․구장(舊章)”이라는 문언이 기재되어 있었다. 절차상 조선이 봉서 형식의 국서에 “인의․구호” 등과 관련된 문언을 선제적으로 기입한 후, 막부 쇼군으로부터도 동일한 의미의 문언이 기재된 회답서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언 기재란 외교적으로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일 양국 모두 자신의 외교상대를 향해 새로운 쇼군 습직으로 통신사외교가 다시 재개될 때까지 전례에 따라 “인의․수목”을 서로 간에 합의 내지 약속한 것으로, “인의․구호․인호․수목․교호 이외의 것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하자면 상대국의 행동을 제약하는 중요한 외교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막부 쇼군과의 이러한 국서 왕복을 통해 ‘교린․우호'라는 다짐을 받아냄으로써 다음 통신사 요청이 있을 때까지 남쪽의 안보, 나아가 양국 간의 평화를 약속 내지 확인받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