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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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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41 No. pp.41-74
三浦時代における倭使上京路の復原研究
轟博志 立命館アジア太平洋大学 敎授
Key Words : Three Ports (Sampo),Capital-bound Routes (Sanggyeong-doro),Gosa Chwaryo,Haedong Jegukgi,Historical Geography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후기 역로망이나 통신사 및 연행사와 같은 왕조의 사행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했던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 사신 상경로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고찰의 시작 단계에 위치하는 것이다. 첫 단계로서 우선 기록에 정리된 상경로를 조선후기 역로 및 통신사행로와 비교하면서 그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상경로의 특성과 그 배경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자 했다. 육로는 삼포왜란 이전에는 내이포(제포)에서 우로, 부산포에서 중로, 염포에서 좌로가 각각 다른 경로로 한양까지 도달하였으며, 왜란 이후에도 기점이 모두 부산포로 변경됐을 뿐3개 노선은 유지되었다. 민폐 집중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통신사행로에 좌도(왕로)와 우도(복로)가 있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3개 상경도로는 각 포구왜관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거리가 되도록 선정하고 있어서, 삼포의 입지와 상경도로의 선형 설정 사이에 지리적인 상호작용이 있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수로는 낙동강과 한강 수계를 이용하여, 육로를 보완 대체하는 역할을 가졌다. 연행로와 중국 사신의 사행로는 서로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란 전후라는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통신사행로와 상경도로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리고 조선후기에서 신경준 김정호와 같은 역사지리학자의 손으로 여타 지리지에 기록된 대로 노선 체계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간선도로였던 영남대로(제4로)와 일치하는 노선은 하나도 없으며, 일부 구간에서 중복이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하나는3개 경로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려고 한 결과일 수 있고, 또 하나는 이와 같은 노선 선형이, 임란 이전 조선초기 나아가 고려시대의 역로망의 흔적일 가능성도 가설로서 제시해 둔다. 이 글은 상경도로의 지리학적 복원의 첫 단추에 불과하여, 향후 기타 기록물, 기행문, 임란 이전 통신사로, 일본측 자료 분석, 그리고 현장조사 등을 추가하여 최종적인 경로 복원을 완수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하기번이 상사 및 막부 관료에 대해 시행한 접대와 간소화 정책에 대해 규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당시 통신사 외교가 단순히 대마도와 조선 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 외교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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